입대 후, 아무 생각 없이 노는 것도 행복했고 훈련소에서 작은 것을 성취하는 일은 매우 쉽기 때문에 금방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훈련소에서 나오고 인생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놀았지만 그래도 군복무 기간동안 자격증을 따기로 했기 때문에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필기시험을 합격해도 기뻤고 자격증을 딸 때도 성취감이 최대치였다. 전공에 관한 공부를 하는 것도 즐거웠고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쌓는 것도 좋았다. 자신감도 넘쳐나서 많은 지식들을 습득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하지만 군 간부의 잦은 핀잔과 백신을 맞은 후 심장을 내가 수동적으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멈출 것만 같고 죽을 거 같은 감각을 많이 느꼈다. 당시 나는 군인 신분으로서 강해져야만 하는 압박을 갖고 있어서 심각하게 티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잘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이 세상의 규정을 마음대로 정해버리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제어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시간이 갈 수록 자격증은 결국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꼈고 군복무동안 최대한 나의 스펙에 남는 것을 만들었으면 해서 수능을 볼까했다. 아무래도 대학은 가장 큰 간판이라 생각했다. 또한, 옆에 또래 선임도 수능 공부를 하고 있었고 인터넷 글들을 보며 군수해서 성공하는 이야기를 많이 봤었다. 하지만 수능은 역시 나랑 맞지 않는 공부였다. 나는 재밌는 거나 인생에 도움되는 거나 특별해 보이는 공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술을 준비했다. 시작점은 여기 였던 거 같다. 논술을 붙지 못하면 2년을 편입준비한다는 각오로 논술을 열심히 하자고 나 자신과 다짐했다. 군인 신분의 정신으로 철저히 지키고 싶었던 나는 그 마음이 강인했다. 논술을 떨어지고 나는 편입 시험까지 이 강인한 군인정신으로 준비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편입 준비를 2년으로 잡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 째,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서다. 무작정 공부해버리면 다른 것에 신경쓰여 공부가 잘 안될 거 같기에 판을 보면서 어떻게 돌아가는 지 눈여겨 보기 위함이다. 둘 째, 오래 보면 어려운 것도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셋 째, 오래 기간을 잡으면 공부량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세번 째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오산이다. 자격증 공부는 길어야 3주인데 3주 열심히 하는 것이랑 그 이상으로 장기간 오래하는 것은 즐기는 것이 아니면 정신적으로 한계가 있다. 공부할 때 난 그 기간을 내 인생에 없는 것이라는 마인드로 공부를 하는데, 2년을 없애 버리겠다는 각오로 하게 된 것이다. 난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저 군인 정신을 빌미로 강한 척 한 것이었다.
인생을 솔직한 공부가 아닌 스펙을 위한 공부, 남을 위한 공부, 즉 위기지학(爲人之學)을 행해온 것이다. 마음가짐만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는데 행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여러 절제를 성공한 나는 우선 해야할 일이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절제습관도 한 몫한 거 같다.
나는 편입을 해도 내 인생에 크게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목숨을 걸만한 이유가 크게 없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편입 공부를 하였다. 아직 학벌로 크게 치여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학창시절에도 그랬다. 스스로 가두리를 만들고 인터넷에서나 흘러들어오는 학벌차별만으로 판단을 하였다. 내 대학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실력에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기름만 부으면 활활 타오를 자신이 있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자신이 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남이 아닌 내가 정한 길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게 늦게나마 명확해졌고 나는 그것만 쫒을 것이다.
편입공부와 전공공부를 투 트랙으로 가져가면 좋지만 나의 정신 체계로서는 그러기가 힘들다. 전공 공부는 큰 시험도 없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실력을 쌓아가며 살아가면되는데 편입공부는 하나 뿐인 기회를 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투자할 때 선택에 대해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를 해도 불안감이 생긴다. 왜냐하면 내 자아에 대한 시간이 뺏기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자아에 대한 시간이 뺏기는 동안은 내가 살아도 살아있는 기분이 아니다. 선택적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기분이다. 이는 편입공부 뿐만 아니더라도 하기 싫은 마음을 절제하여 행동할 때도 생긴다. 전역은 했어도 여전히 군인인 기분인데 군인이 아니니까 자아에 혼란이 생긴다. 내가 살아도 살아가는 게 느껴지지 않으면 지구가 감옥이 된 기분이다. 왜 태어났는지 생각함을 넘어서 온몸으로 '무'가 느껴진다. 자기 전에 수면상태로 들어가기 직전에 많이 느낀다. 더 이상 그런 기분을 느끼기 싫다. 처음에는 심장을 내가 수동적으로 뛰게하지 않으면 멈출 것 같은 기분, 다음에는 동작 하나하나 움직이는데 무의식적으로 되는 게 힘들고 의식적으로 해야 되는 기분, 그 다음은 길가다가 내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죽어있는 기분, 다음은 지구가 감옥이 되어 살아있어도 의미가 없어서 미칠 거 같은 기분. 난 이 감정들이 백신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하고 더 강하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백신이 무관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제는 내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생긴 스트레스가 더 불을 붙였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은 인생 전체를 긴장하면서 살기 싫다. 앞에 있는 현실만 헤쳐나가고 싶다. 숨을 고르게 쉬고 싶다. 작은 성취부터 차근차근 인생을 다시 즐기고 싶다. 진실된 나로 사람들을 대하고 싶다. 진실된 나로 살고 싶다. 오늘은 입대 2년째 되는 날이다. 어쩌면 오늘이 진정한 전역날 일수도..